3화

 
 비가 내리던 어느날. 그녀와 싸운 나는 비에 젖은 옷을 말리며 건물 입구에 죽치고 서 있었다. 딱히 열받아서 비를 맞으려고 나온 것은 아니었다. 그녀의 기분을 풀어주고자, 선물이라도 사러 나왔는데, 마침 때가 장마철이라 비가 내렸을 뿐이다. 그리고 나는 우산을 준비하지 않았던 것. 다행히 약은 먹었다.
 언제 그칠 지 모르는 비를 한시간, 두시간 바라보며 서 있는데, 번화가 저편에서 눈에 익은 우산을 들고 걸어오는, 눈에 익은 누군가를 발견했다. 나는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여기저기를 둘러보다가 나를 발견하고는 나에게 달려왔다.
 거기서 그녀가 했던 말들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렇게 그녀와 로맨스를 찍고, 그녀가  비가 그칠것 같지 않으니 아예 옷을 새로 사자며 근처 옷가게로 들어갔다.
 0이 네 개 붙어 있는 티셔츠와 0이 5개 붙어 있는 청바지, 0이 4개 붙어 있는 남방을 사 입고, 어떤 관계냐는 점원에게 채민은,
 "애인이요!"
 라고 답해주고, 해명하느라 고생하고, 더러운 범죄자를 보는 듯한 시선을 애써 피하고…….
 하지만 그녀와 무슨 얘기를 주고 받았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

 "…."
 "임마 인나라, 거서 자면 감기든다 안하나."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 살며시 눈을 뜬다.
 누군가가 나를 안아든 채 얼굴을 툭툭 치고 있었다. 허리와 다리에는 차갑고 딱딱한 감촉. 옆으로는 희미하게 침대가 보이는데, 왜 바닥에 누워 있는 건지…….
 아무튼 그런 나를 누군가가 안아들고 있는 모양이다. 머리카락이 얼굴을 간지럽히는 걸 봐서는 여자같다
 "채민…."
 거기까지 부르다가 상대가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고 입을 다물었다.
 "…."
 쾅, 하고 머리가 바닥에 부딪쳤다. 나를 안고 있던 선셋은 내가 깬 걸 확인했는지 안고 있던 손을 탁 놓아버린 것이다. 
 "뭐 하는 짓입니까!"
 나는 뒷통수를 문지르며 선셋에게 소리쳤지만 선셋은, 이제 다 깼지, 하면서 딴청을 피웠다.
 "어, 일어나셨군요."
 내 소리를 들었는지 토스트를 씹고 있던 미드나잇이 부엌에서 말했다.
 "아, 예.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자, 미드나잇이 답했다.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부작용이 심하다고. 당신도 그 모양이고, 선셋도 부상을 당해 일단 빠졌습니다."
 선셋이 부상? 완전 무장한 경비병들을 상대로 일격에 헤드샷을 날리면서도 상대로 하여금 총을 쏠 기회조차 주지 않는 괴물이 어쩌다가 부상을 입었다는 거지?
 의아해하면서 선셋을 보니 그녀는 머리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그리고 붕대의 뒤쪽은 살짝 붉게 물들었다.
 "체, 그 얘기 하지마라. 완전 짜증난다아이가."
 "…. 빠졌다니 그러면 채민이는…."
 "들으셨죠? K.라는 사람. 그 사람 말을 들어보니 그쪽도 채민 씨에게 해코지를 할 생각은 없는 것 같습니다. 아직까지는요."
 아직이라니, 그 무슨…….
 "거기까진 알 도리가 없죠. 아무튼 오늘 다시 가 볼 생각입니다. 뭐였더라 무슨 차를 타고 건대쪽을 지나갔다는데."
 그에 선셋이 말했다.
 "검정 다이너스티. 차 번호는 내도 기억 안난다."
 "괜찮아. 이미 사람 한 명을 붙여놨어. 자, 토스트라도 드시죠. 아침 안 드셨죠?"
 그리 말을 하면서 미드나잇은 나에게 토스트를 건넸다. 나는 그것을 받아서 입에 물고 식탁에 앉았다.
 "아, 네. 고맙습니다."
 채민을 아직 되찾지 못했는데도, 먹을 게 입으로 들어가다니, 어지간히도 배가 고팠던 모양이다. 
 "그럼, 이제 어떡하실 겁니까?"
 토스트를 삼키고 묻자 미드나잇이 답한다.
 "글쎄요. K.의 말대로라면 아직까지 시간이 조금 남아 있습니다. 그쪽은 채민 씨를 건드릴 생각은 없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쪽이 아니라 채민 씨를 납치한 쪽이죠."
 "그…그게 별개라는 겁니까?"
 "네. 게다가 K.는 현재 뇌종양을 앓고 있어서 가만히 놔 두어도 별 문제는 되지 않죠. 그런데 그 K.가 왜 우리를 방해한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채민을 납치한 쪽에서는 채민을 가만히 놔 둘 생각은 없는 것 같은데. 희미한 기억속에서 채민의 비명이 들려온다. 타이머가 다 되어가 주저 앉았을 때, 나는 그녀의 비명을 듣고, 미드나잇의 말을 듣지 않은 채 그리로 달려갔던 기억이 있다.
 "확실히, 그렇군요. 그들은 채민에게 거기서 인체실험을 했던 모양입니다."
 "…네?"
 거슬리는 단어를 듣고, 그를 바라본다. 미드나잇은 내 시선을 받아 넘기며 대답했다.
 "채민 씨가 죽지 않는다는 것은 알고 계시겠죠. 그들도 역시. 그래서 채민 씨를 소재로 해부학 실습을 한 모양이더군요."
 순간 몸이 먼저 반응했다. 쾅, 하고 주먹이 테이블에 내려꽂혔다. 덕분에 미드나잇의 앞에 있던 앞접시가 흔들려 그가 먹던 토스트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뭐, 라구요?"
 그렇다면 내가 눈길 위에서 구르고 있을 동안, 그녀는 죽는 것 보다 더한 고통을 죽지도 못한 채 받아야했다는 것이다. 물론 그 새끼들이 친절히 마취를 해줬을 리는 없다.
 그녀는 두 눈 다 뜬 채로 자신의 배가 갈리거나 뼈가 도려나가는 것을…….
 "일단 진정좀 하세요. 열받는 건 저희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떻게 진정하라는 겁니까!"
 "…. 힘든 부탁이라는 건 알지만 일단 진정하세요. 흥분은 당신 심장에 좋지 않습니다. 채민 씨를 구했는데 당신에게 문제가 생기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리 말하면서 그는 바닥에 떨어진 토스트를 주워 한 입에 털어 넣었다. 표정을 봐서는 그리 열받아 하는 것 같지는 않지만, 그의 얘기대로 미드나잇이나 선셋 역시 전부터 채민과 알던 사이라면…….
 나와 같을 것이다.
 나는 일단 기분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눈을 감고 심호흡을 했다.
 "좋습니다. 그럼 본론으로 돌아가죠. 일단 오늘 당장 채민 씨를 탈환하러 가는 건 기각입니다. 지금은 제 쪽 사람에게 맡겨 보는 게 나을 것 같군요."
 "가는 내 별로 신용을 몬하겠다아이가."
 선셋이 투덜거렸지만 미드나잇은 묵묵히 커피만 마실 뿐이었다.

by 스탈링 | 2010/03/07 23:32 | 트랙백

2화

준혁은 터져나가려는 심장을 느끼며 거칠게 숨을 내쉬고 있었다.

손가락하나 까딱할 수 없다.

단지 자신의 미칠듯한 심장소리만이 들릴 뿐.

" 점마, 분명 경고 했는데...쯧쯧 "
 
" 어쩔 수 없다, 빨리 실어! 더 이상 지체 할 수 없다. "

" 아나~   .........  "
 
누군가가 날 들어서 옮기고 있다. 선셋인가...누구든지 상관없다.

빨리 그녀에게로 가야...

" 이런 벌써 상황종료인가?  허어~  안에 살아 남은 사람 혹시 있는지? "






" 턱 "

" 탕 , 탕 "

미드나잇과 선셋은 뒤를 돌아봄과 동시에 총을 빼어 소리가 난 쪽으로 발사했다.

그로인해 준혁은 바닥으로 떨어진 것이 당연하다.

" 허어~ 이거 너무 앞서 나가면 안돼요... 아직 그렇게 싸울 때가 아니거든요. "

털 달린 검정 가죽 자켓을 입은 남자는 입가에 미소를 그리며 말했다.

" 저 점마 피했노?! 말이 되나?!!?? "

선셋은 어이없듯이 그 남자를 쳐다보고 있었다.
 
거리는 몇 미터 밖에 되지않는다.

미드나잇과 선셋은 경비들을 일격에 헤드샷 할 정도로 실력이 좋다.

그런데 이 남자는 그것을 피해낸 것이다.

" 물론 저 이기에 가능하지요 " 

그 남자는 자신을 뽐내듯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한다. 

분에 못참은 것인가, 선셋은 물론 계속 데저트 이글을 계속 발사했다.

" 다 피해가는 군... " 

미드나잇이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총알은 그를 알아서 피해 간다는 듯이 그를 피해갔다.

틱, 

데저트 이글의 탄약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선셋이 그 즉시 장전하려고 할 때 

" 그만...하시죠... "

쿠웅!

그 남자는 순식간에 선셋의 뒤에서 나타나 선셋의 머리를 팔로 감고 땅으로 온 몸을 실었다.
 
깔끔한 리버스 DDT였다. 

선셋의 뒷 머리가 땅에 심하게 부딪혔고 충격이 큰 듯 정신을 잃었다. 

탕탕 

미드나잇이 그 남자에게 리볼버를 쏘자 그 남자는 역시 피하며 뒤로 물러났다. 

미드나잇은 그 남자에게 총을 겨누며 선셋의 곁으로 갔다.

" 죽일 정도로 세게는 안했고요, 단지 뇌진탕가능성만 있겠죠... 총이나 칼에 맞는거 치고는 나쁘지 않아요. "
 
"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

선셋의 상태를 살피고 미드나잇이 남자에게 물었다. 

" 머 더 이상 추격을 단념하라는 거지요, 머릿수가 두명이면 한명은 부상자 한명은 추격할 수있겠지만 하나면. "
 
" 하나면 추격이 힘들다는 것이군. "
 
" 딩동댕! 정답! 상품은... "
 
탕탕탕!
 
" 니 목숨? "

그사이에 미드나잇은 리볼버를 갈겼다. 

" 아 총은 소용없어요, 학습능력이 붕언가? "

역시 그 남자는 총을 피했다. 

" 제 미션은 그쪽 처단하는게 아니라 이곳 놈들이 일처리 제대로 하는 건지 책임지는 것뿐이에요. "

남자는 빌딩을 한번 보고 

" 모 입싼 교수라서 뒷처리 해야했는데 그쪽이 해주셔서 편하긴 했죠. " 

탕탕탕탕!

" 수고비로 니 목숨 주는게 어때? " 

" 교수 목숨은 생각보다 값이 안나가요. 근데... 안돌아가나요? 여자는 천천히 해도 되지만 그 남자는 백퍼 죽을 텐데? "

미드나잇이 준혁을 보고 다시 그 남자를 봤! 

" 이사람 심장이 아픈가 보내, 허어 그 약 먹였구나...부작용이 심할텐데...쯧쯧 "

그 남자는 그 사이에 준혁의 옆에 서서 준혁을 살펴보고 있었다. 

" !!! " 

미드나잇은 굳은 얼굴로 그 남자를 보고 있었다. 

" 추격을 단념하겠다. 보내주겠나? "

" 하아~ 빨리 가요! 뒷처리 해야 하니 퇴근하려면 빨리 해야하거든요. " 

그 말이 끝나자 미드나잇은 준혁과 선셋을 자신의 차에 실었다.  

재빠르게 미드나잇은 차에 시동을 걸고 그 자리를 빠져 나갔다.

빽미러로 본 남자는 잘가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차가 그 지역을 빠져나간 후에 그 남자는 주머니에서 차키같은 스위치를 눌렀다.

우르르~~꽝!!! 

빌딩에서 진동이 일기 시작하더니 빌딩안에서 큰 폭발이 일어났다. 

빌딩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남자는 무너지는 빌딩을 보며 

" 부실 공사군♪ "

하며 어둠속으로 사라져갔다. 







미드나잇은 차를 몰면서 다이얼버튼을 눌렀다. 

웅~ 철컥

" 미드나잇 상황보고, 빌딩서 전원 사살, 채민은 이미 빼돌려졌습니다. 
 
  상대 차량은 26 러 4179, 검정 다이너스티로 청담대교를 타고 건국대쪽으로 빠진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현재 상황은 강준혁씨와 선셋의 부상으로 추격은 불가능합니다. " 

" 선셋이?? 어떻게 된 것인가...? " 

상대편은 중저음의 목소리로 미드나잇에게 물었다.
 
미드나잇은 입술을 깨물으며 

" 랭크 S의  K. 인듯 합니다. 총알을 다 피하고 엄청난 스피드에 무기 없이 선셋을 제압했습니다. " 







준혁은 멍한 상태에서도 미드나잇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 K. 라... 잊지않는다... '
 

차는 맹렬한 속도로 도로를 질주 했다.  
   

 
  

 

  
   

 


 
 

by 스탈링 | 2010/01/21 16:15 | 트랙백

프롤로그 + 1화.

 

Prologue.

 

그날은 눈이 내리던 날이었다. 그래, 첫눈이 하염없이 내리던 날. 꽃잎처럼 붉은 눈. 아니, 비인가? 아니, 눈이다.

그것도 새하얀 눈. 붉은 것은 내 피였을 것이다.

그날은 정신이 없었다. 왜냐면 그때의 나는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넘어갔다 왔다 하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내 앞에는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남자 셋이 내 지갑을 들고 웃으며 서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생사를 헤매었던 건 딱히 이 녀석들이 흉기로 날 찔렀기 때문은 아니다. 찌질하게 몇 만원 삥 뜯으러 다니는 녀석들에게 그런 깡이 있을 리가 없다. 녀석들 중 리더로 보이는 놈이 어퍼컷을 잘못 휘둘러 내 심장을 가격했기 때문이다.

나는 선천적으로 심장이 정상인보다 약하기 때문에 시도 때도 없이 파업을 할 때가 있는데, 주먹에 맞았을 때의 충격 탓인지 그때도 심장이 멎으려 했을 것이다.

“……!”

소리 없는 아우성이라는 게 그런 것이었겠지. 비명을 지르고 싶지만 뇌에 산소공급이 되지 않아 제대로 몸을 움직일 수 없다.

“참나, 87년생이면 군대도 갔다 왔을 나이구만.”

내 지갑을 들고 있는 - 리더 - 녀석이 지껄였다.

“그 나이 처먹고 고삐리한테 빌빌대냐? 나 같으면 야산에서 목을 메겠다, 병신.”

하지만 내 상태가 이상하다는 걸 알자 그 옆에 있던 녀석이 리더에게 말했다.

“야, 이 새끼 위험한 거 아니냐?”

위험하다. 딱 봐도 위험하다고, 병신 새끼들아. 네놈들은 사람이 눈 까뒤집으면서 헐떡대는데 안 위험한 것 같냐?

“야, 씨팔 좆됐다. 이 새끼 죽을 것 같은데?”

상황이 그쯤 되자 리더 녀석도 당황한 듯,

“튀어, 튀어!”

라고 소리치며 똘마니들을 데리고 사라졌다.

자신들 말고는 목격자가 없어서, 그 세 놈은 내 지갑에서 7만원과 신용카드를 뺀 뒤 지갑은 쓰레기통으로 던져 넣고는 조용히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내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아, 정말 죽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봐라,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게 얼마나 쉬운 일인가. 계단에서 미끄러져도 재수 없으면 죽는 게 사람이다. 하물며 나 같은 병자는 어떻겠는가.

그래, 그렇다면 까짓 거 죽어 주마. 어차피 난 죽는다. 그 이외의 선택지는 없다.

그리고 이 세계도 이미 죽어 있다. 아아. 온 세계에 죽음이 만연해 있다. 허무한 죽음.

죽음은 허무하다.

명예로운 죽음, 의미 있는 죽음 따위는 믿지 않는다. 지극히 개인주의적인 생각인지도 모르겠지만, 죽고 나면 아무것도 없다. 그 사람의 현재도, 쌓아 왔던 과거도, 이어질 미래도. 모두 사라진다.

그래서 어쩌라고, 누군가 물었던 적이 있다. 너는 어린 새끼가 뭐 그런 걸 생각하냐고. 자기는 마흔이 넘어서도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다고.

참으로 배부른 병신이라고 생각했다. 너는 한 번도 죽음을 경험한 적이 없으니까 그런 태평한 소리를 지껄일 수 있다. 나는 한 달에 한 번 꼴로 죽었다가 소생한다. 주기는 매우 불확실하다. 3주에 한 번일 수도, 5주에 한 번일 수도, 1주에 한 번일 수도 있다. 대충 평균을 내 보면 한 달에 한 번인데 그렇기 때문에 나는 요 2년 간 병원에서 나온 적이 없다.

병원은 나 같은 환자들에게 있어서는 감옥이나 다름없다. 하루하루 생명이 꺼져 가는 걸 느끼면서, 그러면서도 절대로 밖으로 나갈 수 없다. 나가면 남은 생명마저도 허무하게 없어져 버릴 테니.

나 같은 환자들에게는 희망이 없다. 희망을 가진 사람이 있다 해도 로맨스 드라마처럼 언제나 미소를 잃지 않는 병약 소녀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희망도 곧 절망으로 뒤바뀌게 된다.

병원에서 새 삶이 태어나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병원이란 곳은 축음이 충만해 있는 장소다. 수많은 생명들이 병원에서 사그라들었고, 또 사라져 간다.

내 생명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죽음에 좀먹혀 갔다. 그리고 조만간 그대로 죽었겠지. 그래서 나는 지금은 안 계시는 아버지를 설득해 4개월 전에 퇴원했다.

그런다고 내가 죽는다는 결말에는 변함이 없었지만,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로 죽기는 싫었다. 그렇게 계속 임사체험을 하는 것은 더 이상 사양이다. 그러니까 퇴원했다.

하지만 이게 뭔가.

어이없이 죽는 건 똑같다. 이럴 거면 병원에 있는 게 나았다. 그랬으면 적어도 편하게는 뒈졌겠지.

아 젠장, 뒈질 거면 빨리 좀 뒈져라.

내 바람에 답해 주듯, 내 의식은 거기서 끊겼다.

 

 

제일 처음 본 것은 익숙한 천장. 아아, 저승이 아니구나, 하고 생각했다.

망막을 난자하는 형광등 빛에 눈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려보니 나는 일반 병실 침대에 링거를 꽃은 채 누워 있었고, 옆 간이침대에는 못 보던 교복을 입은 여중생 - 혹은 여고생 - 이 내 라이더 재킷을 덮고 자고 있다.

색색, 하고 숨소리가 고른 걸 보니 깊이 잠든 것 같다. 이 아이가 나를 병원으로 옮겨다 준 건가?

그리고 지금 막 문을 열고 들어오는 의사는 내 담당의였던 레지던트다. 그 뒤로 내과과장이 따라 들어오고 있었다. 내과과장은 나를 퇴원시켰던 레지던트를 내가 보는 앞에서 크게 꾸짖었고, 레지던트는,

“네.”

하면서 원망이 가득 담긴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내과과장은 마지막으로 그에게 오더를 내리더니 한숨을 쉬고는 밖으로 나가 버렸다. 생각해 보니, 전에 내가 퇴원한다고 할 때, 입원비까지 대 주겠다며 한사코 말렸던 사람이 저 과장이었지 나름대로 투철한 의사라 할 수 있겠으나 나로서는 귀찮을 뿐이었다.

레지던트는 심호흡을 하며 감정을 가라앉히고, 간호사들과 함께 과장의 오더대로 처치를 하더니 꾸벅, 인사를 하고는 나갔다.

“일어났어요?”

주위가 소란스러워서였는지, 간이침대에서 자고 있던 소녀는 내 침대 위로 머리나 빼꼼 내민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언제부터…?”

일어나 있었냐고 묻자 소녀가 대답했다.

“과장님이 소리 지를 때부터요.”

“간접적으로 나 때문이군. 미안.”

나는 침대위로 다시 쓰러지며 사과했다.

“네? 뭐가요?”

“내가 발작하지 않았으면 네가 날 여기로 데리고 올 필요도, 잠을 깰 필요도 없었을 테니까.”

소녀는 후후, 하고 웃었다.

“그거라면 걱정 마요. 푹 잤으니까.”

“내가 얼마나 이러고 있었지?”

아무 생각 없이 묻는 나에게 소녀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대답했다.

“39시간이오.”

이틀 동안 죽어 있었다는 건가. 자, 잠깐. 이틀?

“학생, 학교는?”

“안 다녀요. 교복은 그냥 입을 옷이 없어서….”

마지막으로 헤헤, 웃는다.

“…. 몇 살인데?”

“음, 어디 보자. 열…, 다섯? 아, 열여섯이에요.”

중학생이었군.

“이름은?”

“유채민.”

“아, 나는…,”

나만 계속 질문하는 것 같아서 내 소개도 하려고 했을 떄, 소녀가 검지로 내 입을 막았다.

“알아요. 강준혁 오빠죠? 올해로 스물 셋이고요.”

어떻게 알았냐고 물어보자 소녀는 주머니에서 내 지갑을 꺼냈다.

“현금하고 카드는 못 찾았어요. 죄송해요.”

그렇게 된 거였군. 지갑에는 내 신분증이 있으니까.

“하지만 지갑에서 지문 채취 같은 걸 하면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거예요. 카드도 제가 도난 신고 해 놨으니까….”

“필요 없어.”

나는 그녀의 말을 잘랐다.

“네?”

“왜, 나를 살렸어?”

돈 같은 건 더 이상 필요 없다. 곧 뒈질 놈한테 돈이 어디 쓸 데가 있다고.

“….”

문제는 곧 뒈질 놈이었던 내가 이렇게 멀쩡히 살아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나는 참을 수가 없었다.

“그대로 죽었으면 좋았어.”

소리를 지를 힘도 없다. 목소리는 갈라져서 내 목소리가 아닌 것 같다.

“왜, 나를 살린 거야?”

소녀, 채민이 내가 죽으려 했다는 걸 알았을 리는 없다. 채민은 그저 위급한 사람을 살리려 했을 뿐이다.

이건 뭐, 물에 빠진 걸 구해 줬더니 왜 살려 줬냐는 격도 아니고, 뭐 하는 미친놈이냐, 하고 생각했다. 내가 봐도 그렇다.

하지만 채민은 오히려 굉장히 슬픈 눈을 하고 반문했다.

“왜, 그런 말을 하죠?”

그 슬픈 눈동자에는 내가 비치고 있었다. 한없이 깊어 보이는 눈동자에 내가 비친다.

마치 깊고 잔잔한 호수같은 눈. 그 심연에 내가 비친다.

나는, 작년 이후로 거울을 본 적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전부 없애 버렸기 때문이다. 사진도 찍은 적이 없다.

1년 만에 보는 내 얼굴은…….일그러져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에 맺힌 물 때문에 일그러져 있었다. 그리고, 금방이라도 울어 버릴 것 같은 얼굴이다.

아아, 나는 일그러진 채 울고 있었다. 눈물은 흘리지 않는다.

내 눈물은….

깊은 호수의 수면에 파문이 인다 - 그녀가 대신 흘려주었다 -.

내갉, 울린 건가. 처음 본 소녀를 내가 울린 건가.

너는 어째서 우는 건가. 왜 내 눈물을 네가 대신 흘려주는 건가.

“그런 말, 하지 말아요.”

무리다. 23년을 그렇게 살아 왔다.

“괜찮아요. 제가 대신 울어 줄테니.”

어째서, 물어 보았다. 채민은 눈물을 머금고, 입가에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저는 그것밖에 못 하니까요.”

그것이 나와 그녀의 만남이었다.

 

1화.

 

2년 정도가 지났다. 때는 바야흐로 2010년의 크리스마스를 1일 앞두고 있었다. 다시 말하면 크리스마스 이브. 거리는 수많은 커플로 붐볐다. 간혹 동성 친구들끼리 모인 것도 보였다.

나는 크리스천은 아니지만 크리스마스가 어쩌다가 연인을 위한 날로 변질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만인에 대한 사랑을 전파한 예수가 태어난 날이어서 그런가?

아가페와 에로스는 엄연히 다르다고 생각은 되지만 딱히 저 커플들의 중앙으로 가르고 들어가는 커플 커터가 될 생각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나도 겉만 보면 저기 저 여자들을 옆에 끼고 다니는 남자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내 옆에서 나와 머플러를 같이 두른 채로, 내 팔짱을 끼고 걷고 있는, 교복을 입은 소녀가 있으니까. 그녀의 이름은 유채민으로, 지나다니는 다른 커플들이나 솔로부대원들로 하여금 나를 롤리타 콤플렉스로 보게 했다. 혹은 시스터 콤플렉스?

뭐가 됐든 하나도 달갑지는 않다.

“채민아, 제발 그 옷 좀 어떻게 할 수 없냐?”

“네? 왜요?”

“아니, 아무리 그래도 2년 동안 같은 교복은 좀 그렇잖아?”

그에 뭘 모르는 건지, 모르는 척 하는 건지 모를 목소리로, 채민은 상큼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저는 괜찮아요. 준혁 오빠랑 만나기 훨씬 전부터 입고 있었는 걸요?”

“아니, 내가 안 괜찮아서 그래.”

“어머어머, 취향이 바뀌셨나봐요? 역시 세일러가 좋으세요?”

일부로 그러는 거냐?

“아니, 애초에 교복은 취향이 아니야.”

그런가요, 하며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는 채민.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보통 25살 먹어서 16살짜리 여중생하고 같이 팔짱끼고, 머플러 하나를 같이 두르고 있으면, 뭐랄까, 주위의 시선을 팍팍 받게 되는데, 여자들의 생각은 다른 거냐?

나 같은 경우는 롤리타 콤플렉스, 혹은 시스터 콤플렉스, 채민의 경우는 브라더 콤플렉스라는 명예로운 칭호를 받게 될 텐데.

“후우, 차라리 옷이나 사러 갈까?”

“네?”

그래, 계속 따가운 시선을 받는 것 보다야 몇 만원 정도 쓰는 게 나을 거다. 게다가 날짜가 바뀌려면 아직 5시간이나 남았으니 옷가게나 백화점도 아직 영업을 할 것이다.

“백화점 가자. 크리스마스 선물 사 줄게.”

“와아, 선물인가요?”

하고 환하게 좋아라 하는 그녀를 볼 때는 미처 깨닫지 못했다. 여자와의 쇼핑은 절대 몇 만원에서 끝날 리가 없다는 것을.

 

“어머, 남매이신가봐요?”

모 유명 백화점의 영 캐주얼 코너에 들어가자 점원이 우리를 맞았다.

채민은 긍정인지 뭔지 모를 웃음을 짓고 있다. 나는 롤리콤 보다는 시스콤이 나을 것 같아서 그렇다고 대답했다.

“이 녀석 옷 좀 맞춰 주려고요.”

“그러세요? 어떤 걸 원하세요? 들어와서 보시겠어요?”

“음, 여자 옷은 잘 몰라서요. 사장님꼐서 몇 벌 골라 주세요.”

알겠습니다, 하면서 채민과 나를 매장 안으로 안내하는 점원.

“어떤 스타일을 원하세요?”

“이 녀석이 워낙 어려 보이니까는, 여대생 정도로 보이게 해 주세요.”

내 말을 들은 점원은 한 10초 정도 고민하더니, 이내 몇 가지의 세트를 제시했다.

한 세트는 블랙진에 흰색의 긴팔 티로 무난한 스타일이었다. 두 번째 세트는 흰색 스커트와……. 세 번째 세트는 어쩌구…….

내가 부탁한 거지만 채민이 워낙에 유아 체형이라 하나도 어울리지 않았다.

결국 산 것은 첫 번째 세트였다. 하지만 겨울에 그런 차림으로는 나갈 수 없으므로 흰색 후드티에다가 더플 코트도 샀다. 그리고 이곳 저곳 돌아다니다가,

“우와, 저거 예쁘네요.”

라던가,

“저거 꼭 갖고 싶었는데.”

등등의 말을 지껄…, 하는 바람에 몇몇 벌의 옷과, 신발을 사다보니 원래 예상했던 것의 5배 정도 되는 돈을 써 버렸다.

몇 년치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한꺼번에 다 산 것 같다.

백화점에서 나왔을 때 채민은 드디어 교복에서 탈피하여 캐주얼한 복장을 입고 있었으며 나는 양 손에 쇼핑백을 네 다섯 개 정도 들었다는 것 외에는 변함이 없었다.

“와아, 교복보다 따뜻하네요.”

“당연하지. 겨울에 춘추복 입고 다니는 사람이 어딨냐?”

베시시 웃는 채민.

“잘 어울려요?”

“음, 반항기 여고생이 담배 사려고 언니 옷 꺼내 입은 것 같아.”

“체. 결국 별로 달라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네요.”

채민은 삐쳤어요, 하며 고개를 휙 돌렸다.

“그래도 잘 어울려.”

“정말요? 거울이 없어서 잘 모르겠어요.”

대신으로 나는 그녀를 오락실에 데려가 스티커사진을 찍어서 보여 주었다.

어때, 하고 묻는 나에게 채민은 나와 같은 감상을 말했다.

“정말 언니 옷 몰래 꺼내 입은 불량 여고생 같네요.”

“그래서, 맘에 안 들어?”

도리도리.

거 다행이군.

자 그럼 배도 고픈데, 뭐라도 먹을까?

“그럴까요? 마침 저도 출출한데. 먹고 싶은 거 있어요? 이번엔 제가 살게요.”

오오, 제대로 리벤지할 수 있는 기회다.

“좋아, 그럼…….”

나는 사양않고 주문 리스트를 말했다.

다음날, 지끈거리는 머리를 감싸며 일어났다.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익숙한 천장. 하지만 이번은 병원이 아니라 내 방이다. 병원에서는 작년에 나왔다. 병원비(대부분 입원비)를 감당할 수 없다고 말해 두긴 했지만 이유는 2년 4개월 전과 똑같다. 내과과장은 또 한번 나를 말렸지만 나는 그래도 나왔다.

그래서 오늘은…, 어제 일이 기억나지 않는다. 내 방에서 뒹구는 소주병과 맥주캔, 그리고 내 침대에서 코트도 벗지 않은 채로 자고 있는 채민이 어제의 일을 조금씩 상기시키고 있었다.

가만 보자, 어제는 분명, 자신이 저녁을 사겠다는 채민을 호프로 데려가서 맥주를 마시고, 바에 가서 칵테일을 마시고, 살짝 취기가 오른 나와 이미 다 죽어가는 채민은 집으로 돌아가던 중, 편의점에 들러서 소주와 맥주를 더 사다가 집에서 마신 것…, 같다.

“미쳤군 완전.”

지병이 있는 나는 술, 담배는 위험하다. 다행히 의사가 약간의 술은 허용 범위라 하긴 했지만, 어제 나와 채민이 마신 술의 양은 허용치를 크게 벗어나 있었다. 방 안에 굴러다니는 소주병만 해도 세 병이 넘는다.

“으으.”

어머니가 끓여 주시던 콩나물국을 사무치게 그리워하며 채민이 깨지 않게 부엌으로 가 물과 함꼐 약을 먹었다.

그리고 바이올린 케이스를 들고 소파에 앉았다. 시간을 보니 이미 10시가 넘어 있었지만 나는 채민을 꺠우지 않기 위해 약음기를 끼고 조율을 했다. 한동안 관리를 해 주지 않아서 그런지 바이올린은 제 소리를 내 주지 않았다.

“현을 갈아야 하나?”

뭐, 지금 살짝 졸음을 몰아내는 데는 지금의 현으로도 상관없겠지.

나는 바이올린을 어깨 위에 얹고 보잉을 시작했다. 약음기에 눌려, 아주 작은 소리를 내는 바이올린.

그렇게 가벼운 곡을 연주하고 있자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채민이 걸어 나왔다.

“미안. 깨웠나보네.”

연주를 그만 두는 나에게 채민은,

“괜찮아요.”

하며 내 옆에 살짝 떨어져서 앉더니,

“계속해주세요.”

눈을 비비며 말했다. 덧붙여 약음기도 빼란다.

그녀의 말대로 약음기를 빼자 바이올린은 그동안 소리 내고 싶은 걸 많이 참았다고 말하듯, 청명한 소리를 토해냈다.

“실력에 비해 참 좋은 바이올린이네요.”

백만 원짜리 수제니까.

“독학이라 미안하군.”

그렇게 쏘아준 뒤 나는 좀 전에 연주하던 곡을 다시 처음부터 연주했다. 제목은 모르나 어렸을 때 몇 번 듣고 좋아서 외워버린 곡이다.

“Amazing grace. 오늘 딱 어울리는 곡이네요.”

“응?”

연주를 계속하면서 묻자 채민은 다시 한 번 이 곡의 제목을 말했다.

“Amazing grace. 찬송가예요.”

그런 제목이었나? 확실히 찬송가였던 것도 같다.

아무튼 그리 말한 채민은 내 연주에 맞춰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실력에 비해 참 좋은 목소리네.”

“체. 리벤지(revenge)는 어제 한 번으로 족하지 않아요?”

나는 훗, 하고 웃었다. 하긴, 어제 술값이 조금 나왔지.

“끝났으면 다음 곡 해봐요.”

재촉하는 채민. 나는 10초정도 생각하고는 다음 곡을 선정했다. 이것은 나도 제목을 아는 곡이다. 그녀 역시 알고 있는지 또 한 번 내 연주에 맞춰 흥얼거린다.

You raise me up.

“찬송가만 부르네요.”

노래가 끝나자 채민이 말했다.

“교회 다녀요?”

“나는 교회하면 치를 떠는 인간이야. 그리고 이거 찬송가 아닌데??”

“에, 그런가요?”

그래, 대답하고 바이올린을 케이스에 도로 집어넣었다.

“끝?”

고개를 끄덕였다. 잠은 깼지만 숙취 때문에 머리가 아파서 더 이상 할 수 없을 것 같다. 밥이나 먹어야지.

“그건 그렇고 참 좋은 곡이에요.”

“You raise me up?”

끄덕끄덕.

“그렇지.”

가사 내용은 참 성가 같지만.

국내 CCM가수들이 이 곡을 번역해서 불렀는데, 아마 그 때부터 CCM이라고 인식되어 버린 것 같다.

“오빠?”

나도 처음에는 그런 줄 알았고 말이지.

“저기, 오빠?”

“응? 아, 미안. 듣고 있지 않았어.”

“그러니까, 밥. 배고파요.”

아아, 그 얘기였나.

“뭔 생각을 그리 해요?”

“채민이는 귀엽구나, 하고 생각했어.”

채민은 토 쏠리는 시늉을 했다.

“어제 먹은 게 올라오려고 해요. 위장은 이미 지났을 텐데.”

“하하, 아무 생각 안 했어. 밥 먹자.”

10시가 넘어서 차린 아침상은 매우 간소했다.

 

밥을 먹고 한동안 자고 일어났더니 채민은 없었고, 거실 테이블 위에 그녀가 남긴 듯한 메모가 있었다.

[잠깐 나갔다 올게요. 사실 깨워서 같이 가고 싶었는데 너무 곤히 자서 그만두었어요. 7시쯤이면 돌아올 테니 저녁 식사 준비해 주세요.

-유채민]

시간은 7시 30분. 뭐지? 일이 늦어졌나?

나는 채민이 부탁한 대로 저녁식사를 준비했다. 아주 오랜만에 갈비찜을 해 보았다. 국물을 맛보니 성공작이었다.

하지만 그 때까지도 채민은 돌아오지 않았다.

대체 뭘 보여주려고 이리 늦는 거야? 서프라이즈 파티라도 하려는 건가?

날짜가 바뀔 무렵, 그 때까지도 채민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제야 그녀가 코트도 입고 나가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가 춥다고 느낀 것은 불과 10여분 전부터였다.

그 전까지 한참을 자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자신은 단순히 추워서 눈이 떠졌다.

그러고보니 나올 때 잠시 집 앞에 가는 거라서 코트도 걸치지 않고 나왔다는 것이 기억난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손과 발이 포박되어 있는지 움직일 수 없다. 입에는 뭔가 물려진 채로 청테이프가 붙어있어 말도 나오지 않는다.

주머니에 들어있는 것들 - 핸드폰, 지갑 - 도 없다. 주변은 어둠. 덜컹거리면서 이동하는 것 같다. 자동차의 트렁크 속인가?

하지만 어째서?

그녀는 여기 있을 이유가 없다.

그녀는 그저 선물을 사러 나갔을 뿐이다.

날짜가 바뀌지 않았다면 오늘은 크리스마스. 그에게 줄 선물을 사러 나갔었다. 뭐가 좋은 건지 잘 몰라서 직원에게 물어보고, 물어보고, 30분 만에 선물을 골라 포장하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이었다.

그리고 그 이후의 기억이 없다. 눈을 떠보니 여기다. 어떻게 된 걸까. 자신은 왜 포박당한 채 차 트렁크에 갇혀서 끌려가고 있는 것일까.

왜, 그 사이의 기억이 지워져 있는 걸까.

아아, 안 돼. 그에게 돌아가야 해.

말을 할 수 있었다면 이리 말했겠지. 하지만 재갈이 물려 있어서 웅웅거리는 소리밖에 낼 수 없다.

“You raise me up, so I can stand on mountain.”

귀에 익숙한 노래가 어둠의 저편으로부터 들려온다. 그녀의 핸드폰 벨소리다. 이윽고 벨소리는 끊겼다. 몇 번인가 더 울렸지만 받는 사람이 없으니 또 끊겨 버리고 매침내는 울리지도 않았다.

그의 전화였을 것이다. 틀림없다. 자신의 번호를 아는 건 그 뿐이니까.

배터리가 다 닳은 걸까? 아니면 그가 전화를 포기한 것일까? 아니면 그녀를 끌고가는 사람들이 전원을 꺼 버린 걸까?

“차 세워.”

얼마 안 가 그런 소리가 들리고 이동이 멈췄다. 그리고는 차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두 명분의 발소리가 들렸다.

덜컹, 하고 트렁크 문이 열렸다. 그래도 시야가 어두운 것을 보면 눈까지 가려 놓은 것 같다.

“들어.”

낮은 톤의 남자 목소리. 성악으로 치면 바리톤 정도일까. 그 말에 누군가가 자신의 몸을 들어올렸다. 그녀는 발버둥치려 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근육 이완제를 놓았으니 수작 부리지마.”

큭, 하고 혀를 차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는다.

이윽고 팔에 따끔한 뭔가가 찔러 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주사 바늘인 것 같다. 그러자 얼마 안 가 몸이 처지고, 머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뭐야, 뭘 한 거야? 속으로밖에 외칠 수 없는 그녀.

“…, 아…, ▪▪▪, …!”

남자의 목소리가 정상적으로 들리지 않는다.

“아직▪ 버▪▪ 것 ▪습▪다.”

“10▪▪ 더 ▪▪해.”

“네.”

마치 라디오에서 노이즈가 흘러나오듯, 주파수를 제대로 잡지 못한 듯, 치직거리고 끊기는 목소리. 이어서 좀 전의 따끔한 느낌이 또 들었다.

“…!”

마치 칼로 찌르는 것 같은 착각. 예리한 통증이 뇌수를 끓게 한다.

그리고 그녀의 의식은 마치 저 심연의 밑바닥까지 가라앉듯, 서서히 사라져갔다.

 

 

뭔가 잘못 됐다. 틀림없다. 어디서부터인지는 몰라도 확신할 수 있다. 누군가의 실수인가, 아니면 고의인가.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히 잘못 됐다.

그러지 않고서야 그녀가 이 시간까지 돌아오지 않을 리가 없잖아.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 같다.

2년 전의 나처럼 고삐리들에게 당하고 있거나, 어떤 사고를 당했거나….

나는 그녀의 코트를 챙기고 라이더재킷을 걸친 뒤 밖으로 나와 무조건 달렸다.

하지만 조만간 멈춰 서야만 했다.

그녀가 어디로 갔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개줄을 채워 준 것도 아니고, 발신기를 준 거솓 아니다. 핸드폰은 꺼져있는 것 같던데, 마지막 위치 추적정도는 할 수 있으려나?

하지만 그러려면 또 어디로 가야 하지? 대리점? 본사? 경찰서?

아아, 머리가 혼란스럽다.

게다가, 이 빌어먹을 심장은 잠깐 뛰었다고 벌써부터 파업을 준비하고 있다.

“큭, 젠장!”

나는 주머니에서 약을 꺼내 물도 없이 씹어 먹었다. 하지만 심장은 그리 바로 진정되지 않았다.

“하아….”

왼쪽 가슴을 부여잡고 신음한다. 왜 심장이 멈춰 가는데 통증이 생기는 건지 모르겠다.

“아아….”

이 빌어먹을 심장아. 제발 진정 좀 해라. 25년 동안 한 번 정도는 말을 들어 줘도 괜찮잖아.

하지만 계속되는 통증. 심장이 통째로 믹서에 넣어져 갈리는 느낌.

숨을 쉴 수 없다. 전신에 혈액이 돌지 않는다. 온 몸은 새 산소를 원하지만, 심폐기능이 이 지랄이어서야 그 부탁을 들어주지 못한다.

씹할, 뭔가를 원하면 이 쪽 부탁도 한 번쯤은 들어 줘야 할 것 아니냐. 이번 한 번만 심장을 제대로 움직여 달라는 게 그렇게도 무리한 소원이라는 건가.

몸이 기울었다. 휘청 하고, 몸은 중심을 잃고 그대로 눈 쌓인 길바닥에 드러눕게 되었다.

“하아. 하아.”

내리는 눈이 조금씩 몸에 쌓이면서, 드디어 약효가 돌기 시작하는지 심장이 조금씩 제 기능을 되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걸로 긴장의 끈이 풀어져서 그런지 이번에는 몸이 축 늘어진다.

“후우….”

여기서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나는 숨을 고르며 몸에 힘을 주었다. 마치 시체가 소생하듯 몸에 온기가 돈다.

자아, 일어나자. 그리고 생각해보자. 그녀가 어디로 갔을지.

하지만, 어떻게?

몸은 일으켰지만 그녀의 행적은 도저히 종잡을 수가 없다. 쪽지에 어디로 간다고 써놓은 것도 아니다. 위치를 추적할 방법도 모르겠다.

“강준혁 씨?” 일단 번화가로 나가 볼까? 주머니에 어제 그녀와 찍은 스티커사진이 있으니 가게마다 수소문하고 다녀보면…….

“강준혁…, 씨?”

하지만 어느 세월에? 번화가에 있는 가게는 대충 세어 봐도 200은 넘어 보인다. 다 돌아다니면 날이 샐 것이며, 그 전에 그녀가 어떻게 될 지도 모른다.

게다가 가게를 다 돌기도 전에 내 심장이 버티지 못할 거다.

“강준혁 씨!”

하지만 그것밖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그래, 번화가로 가자.

그렇게 생각하고 고개를 들었을 때, 그제서야 깨달았다.

“야, 이 씹할 호로 새끼야.”

……. 내 앞에는 왠 인상 좋아보이는, 정장을 입어 직장인처럼 보이는 남자와, 딱 봐도 이 여자가 욕했구나, 할 생각이 들 만큼 험악하게 생긴 여자가 서 있었다. 사투리를 쓰는데, 경상도 사투리인지 전라도 사투리인지 모르겠다. 베이스는 경상도 쪽인 것 같은데. 잡종인가.

“귀를 어따 팔아 먹었나, 등신아. 야가 니를 얼마나 불렀는 지 아나?”

“아, 죄송합…, 내가 왜 사과를 해야 하는 거지?”

“뭐라 씨부리고 있노, 이 간나 새끼…!”

거 주둥아리가 시궁창이군. 옆에 있는 남자도 듣기 거북했는지 팔을 들어올려 여자를 제지했다.

“강준혁 씨죠?”

“네, 그렇습니다만.”

“아, 실례. 저는 미드나잇(Midnight)이라 합니다. 이 쪽은 선셋(Sunset). 본명은 밝힐 수가 없으니 이렇게 불러 주십시오.”

여자와는 대조적으로 미드나잇이란 남자는 예의가 발랐다.

그나저나 독특한 코드네임이다. 한밤중(자정)과 일몰이라. 남자 쪽은 꽤 어울리는 것 같은데 여자 쪽은 선셋보다는 배스터드(Bastard)가 나을 것 같다.

“아 예…. 그런데 무슨 일이시죠? 제가 지금 급해서 그런데 나중에 다시 오시면 안 되겠습니까?”

“걱정 마십시오. 다 알고 도와드리러 온 거니까. 유채민 씨를 찾고 계시는 거죠?”

“어떻게…….”

알았냐고 묻기도 전에 미드나잇이 대답했다.

“채민 씨와는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입니다.”

“채민이가 어디로 갔는지 알아요?”

“네.”

“어디죠?”

미드나잇은 양복 마의 안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불을 붙이고 한 모금 빨았다가 뱉더니 뜸을 잠시 들이다가 대답했다. 신기하게도 그가 문 담배는 던힐 선셋으로 작년 한정판이었다. 저 여자는 던힐 미드나잇인가?

“알려 드린다 해도 그 상태로는 못 갑니다.”

“무슨 말씀이시죠?”

미드나잇은 담배를 입으로만 물고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작은 손거울이었다.

“직접 보시죠.”

“윽!”

안 돼. 거울을 봐서는 안 된다. 그런 걸 다시 보기는 싫다. 나는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몸을 숙였다.

미드나잇은 연기를 뱉으며 말했다.

“이 거울은 괜찮습니다.”

“웃기지 마! 저리 치워요, 당장!”

그러자 선셋이 얼굴을 험상궂게 찡그리며 말했다.

“등신아, 이건 괜찮다 안하나!”

“그…그런 게 괜찮을 리가 없잖아.”

전 세계의 거울을 왜 2007년도에 모두 없앴는지 알면 내가 왜 이러는지 이해할 거다, 시궁창 주둥아리야.

“예, 왜 그러시는 지 압니다만 이 거울은 괜찮습니다.

뭐, 뭐야. 알고 있어?

“저도 보았으니까요. 선셋 역시. 한 번 속는 셈 치고 보십시오. 지금 당신의 상태가 어떤지 직접 보셔야 합니다.”

그리 말해도 여전히 불안함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나는 미드나잇의 말대로 속아주는 셈 치고 거울을 받고 보았다. 그 곳에는….

“뭐야, 이게 정말, 나?”

송장이 거기에 있었다. 아, 아니. 거울에 비치는 건 지금의 나다. 그건 확실하다. 하지만,

“이게….”

산송장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을 정도로 핏기 없는 피부. 눈은 휗하며 다크서클이 과장을 조금 보태면 얼굴 전체를 덮고 있었다.

“아시겠습니까? 제가 얘기하고 싶은 게 뭔지?”

요컨대, 당신은 곧 죽어가는 송장이니 일은 우리에게 맡기고 집으로 돌아가 발 닦고 잠이나 자라는 건가?

“비슷하지만 틀렸습니다, 아쉽게도.”

“별로 아쉽진 않은데요.”

“그리 말씀드려도 어차피 따라오실 거 아닙니까?”

당연하다. 그녀는 2년 전 죽어가던 나를 살려 주었다. 사는 의미를 내게 주었다. 그러니까, 나도 그녀를 위해 뭔가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니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이 약을 드시고 이번 사건이 끝날 때까지 저와 선셋의 말에 무조건적으로 따라 달라는 겁니다.”

“그리 하죠. 근데 무슨 약입니까?”

약의 정체가 궁금하여 물어보자 선셋이 갑자기 끼어들었다.

“니 참말로 점마한테 약 줄 생각이가?”

고개를 끄덕이는 미드나잇. 선셋은 정색을하며 반박했다.

“니 지금 제정신이가? 이 등신 호로새끼가 약 하나 빤다고 날아 댕기는 것도 아이고, 혹시라도 뒈지면 간나 새끼 때문에 니캉내캉 욕 바가지로 처묵는다 아이가.”

…. 나는 그 배로 처먹고 있다. 참 고맙다. 댁한테 먹은 욕 덕에 5년은 더 살 것 같다.

“…….”

미드나잇은 그녀의 욕에 눈살을 찌푸리면서 -당사자가 아닌 사람도 이런데 나는 어떨까 - 그녀의 말을 무시했다.

“원래 당신은 움직이시면 안 됩니다. 병원 침대에 누워서 링거나 맞고 병원 밥이나 드시고 있어야 합니다. 암 Ⅳ기 환자처럼 하루가 지나면서 사그라드는 생명을 안고 계셔야 합니다. 그러면 한 40세까지는 살겠죠.”

“그건 이미 봤으니까 속 그만 긁고 약이 뭔지나 말하시죠.”

“아, 이거 실례했습니다. 아무튼 그 약은 당신이 몸에 부담을 주지 않고 격렬한 운동을 할 수 있게 해 줄 겁니다. 뭐, 당신의 경우는 그냥 몸을 움직이는 것도 ‘격렬한 운동’에 포함됩니다만.”

그렇군.

“약효는 5분이며 섭취 후 약효가 도는 데까지 40분. 지금 드시면 그 쪽에 도착했을 때 약효를 받게 되겠지요.

“5분이라니, 조루네.”

하지만 이거라도 잡아야 한다. 0보다는 5가 크다는 건 유치원생도 안다.

“그렇지만 명심하십시오. 그건 당신의 수명을 늘여주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약효가 풀리고 부작용도 심하니 4분 지나면 몸을 숨기는 게 좋을 겁니다.”

“늘여 주는 건 옆에 계신 여자 분이 조금 전부터 해주고 계셨으니 걱정 없네요.”

“이게 뒤질라고 작정했나? 오냐, 내 한 50년은 더 살게 해 줄까?”

“선셋. 닥쳐.”

“…….”

한 방에 K.O.

“드시고 저희랑 가시겠습니까? 아니면 집에서 기다리시겠습니까?”

나는 대답 대신 약 병을 열고 원샷으로 들이켰다. 박카스 맛이 났다.

미드나잇은 그걸 보더니 웃는 건지 찡그리는 건지 모를 얼굴로 담배를 필터까지 빨아 들이고 버렸다.

“자, 그럼 타시죠.”

그러더니 그는 나를 끌고 차를 주차해 둔 곳으로 향했다.

“세상에.”

그 곳에는 70년대에 생산이 중단된 람보르기니 미우라가 있었다. 그것도 두 대나.

 

 

온통 새하얀 타일로 뒤덮인 방. 변기가 있었다면 화장실로 못 볼 것도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아쉽게도 변기는 없다. 있는 것이라고는 온통 흰색. 하루라도 그 안에 있으면 정신이 이상해질 것 같은, 그저 짙은 흰색만이 있다.

그리고 그 중아에는, 회색의 침대가 있다. 아니, 그걸 침대라고 불러도 될까? 시신을 해부할 때 쓰는 해부대같다. 안락함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차가움.

그 위에는 나신의 소녀가 있다. 외관은 16살정도일까.

흰 피부에 긴 머리가 매력적이지만, 동공이 풀려 있고 입에서는 침을 흘린 것 같다. 그리고 그 주위로 흰 색의 가운을 입고 마스크를 쓴, 의사로 보이는 사람이 세 명 서 있었고, 그들의 옆에는 모르는 사람이 봐도 해부할 때 쓰는 거구나, 할 정도로 차가운 흉기가 여러 개 놓여 있다.

이상하게도 소녀는 죽은 걸로 보이지는 않는다.

가운데 있는 남자가 입을 열었다. 집도의로 보인다.

“이어서 제 41심. 동공 적출.”

아무 감정도 담기지 않은 목소리로 엄청난 소리를 한다.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나머지 두 명의 어시스턴트가 소녀의 머리를 붙잡고 눈꺼풀을 벌렸다. 소녀는 반항해보려 했으나 손발이 단단히 고정되어 있고, 좀 전에 투여된 약물 탓인지 마음대로 움직이지도 못한다. 비명도 지르지 못하는 듯, 그녀의 입에서는,

“으으…,”

하는 갈라지는 신음만 흘러 나왔다.

그러는 그녀를 목소리와 같은 무감정한 눈으로 바라보며 그녀의 왼쪽 눈으로 메스를 가져가는 집도의.

머리를 흔들어 보지만 바이스같은 어시스턴트의 악력에 이도저도 못한 채, 결국 메스가 그녀의 눈을 찔렀다.

“…!!”

그녀의 몸이, 약물 때문에 움직이지 못해야할 몸이 요동친다. 비명을 지르지 못하고, 입도 제대로 벌리지 못하지만,

“▪▪▪!! …!”

생으로 눈알이 도려져 나가는 고통을 그녀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시신경에서 떨어진 눈알을 대충 내려놓은 집도의는 이번에는 오른쪽 눈으로 메스를 가져갔다. 그리고,

“—!”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오른쪽 눈마저 적출했다.

솟아나오는 피가 마치 피눈물처럼 그녀의 얼굴을 타고 흘렀다. 혹은 집도의나 어시스턴트의 가운에 튀기도 했다. 해부대에 붉은 액체가 고인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피가 다시 그녀의 눈으로 흘러들어가고, 적출된 눈 역시 리와인드되듯이 시신경과 연결되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심지어, 메스에도 피 한 방울 남아 있지 않았다.

집도의는, 좀체 알 수가 없네, 하는 표정으로 메스를 내려놓았지만 거기서 멈출 생각은 없는지,

“이어서 제 42심. 흉부 절개 및 장기 적출.

라고 말하며 무섭게 생긴 곡선 모양의 톱을 집어 들었다. 의대생들이 실습할 때 쓰는 해부기세트에서는 절대로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아니, 애초에 해부기로 보이지도 않는다.

그러더니 그것을 그녀의 늑골 아래 부분까지 찔러 넣고 그대로 멈의 윗부분으로 방향을 돌리며 갈아 대었다.

섬뜩한 소리가 그녀의 나지막한 비명을 묻어 버린다. 흘러 넘치는 혈액. 발작하듯 떨리는 그녀의 몸.

얼마 안가 그녀의 흉부가 절제되고, 집도의와 어시스턴트 둘은 그녀의 장기를 적출해냈다.

그리고 또다시, 적출된 장기들과 흉부가 저절로 움직여 그녀의 몸을 원래대로 되돌렸다.

“흠, 이상한 일이군.”

집도의의 목소리가 흰 방에 울려 퍼졌다.

 

 

“큭! 이거 뭐야!”

미드나잇이 이제 다 왔다고 말한 것과 동시에 몸이 갑자기 튀어 올랐다.

흘러 들어오는 이상한 감각. 세상이 빙빙 돈다.

미드나잇은 스톱워치의 스위치를 누르며 말했다.

“약효가 돌기 시작했군요. 이걸 메고 계십시오. 1분 남았을 때 타이머가 울릴 겁니다. 그 때는 화장실로 도망가던 이 차로 돌아오던 하시고. 시간이 다 지나면 또 한 번 타이머가 울립니다. 그때는 이를 악물고 뭐라도 붙잡고 계십시오. 그럼 저희 먼저 들어갈 테니 따라 오십시오. 아마, 10분도 채 안 걸리겠지만.”

속사포처럼 말을 쏘아 내고는 품 안에서 리볼버 두 자루를 꺼낸 그는 옆 차에서 내린 선셋과 같이 도착한 건물의 정문으로 돌격했다.

이 도시에서 막 개발중인 어느 지역의 빌딩. 아직 아파트도 채 완성되지 않았는데, 어째서 이런 빌딩이 먼저 들어서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건물은 수도권 어디서나 볼 수 있을 법한 회사같이 생겼다.

건물 밖에서 경비원들로 보이는 남자 몇 명이 담배를 피우고 있다가, 미드나잇과 선셋을 발견하고 권총을 뽑아 들며 둘을 제지하려 했지만 미드나잇의 리볼버 두 자루가 먼저 불을 뿜었다. 한 사람당 한 발씩, 12발이 정확하게 머리에 명중했다.

미드나잇은 스피드로더를 이용하여 3초라는 말도 안 되는 시간안에 두 자루 모두 리로드를 마치고 이미 건물 안으로 들어간 선셋의 뒤를 따랐다.

“아, 넋 놓고 보고 있을 때가 아닌데.”

이미 15초가 지나 있었다. 나는 차에서 내려 죽은 경비원들에게로 가 총을 확인했다. 하나같이 데저트이글을 들고 있었다. 사설 경비대가 어떻게 이 총을 갖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한 자루는 허리 뒤에 차고 한 자루는 손에 들었다. 확인해보니 둘다 약실에 로드되어있는 탄환을 포함하여 8발씩 장전되어 있다. 내가 총을 쏠 일은 아마 없겠지만 혹시 모르니 탄창도 두 개 뽑아 챙겨들고 나도 둘을 따라 달렸다.

안쪽에는 이미 경비원들의 시체가 수두룩했다. 거의 전부 일격에 헤드샷이었고, 단 한 명만이 심장에 한 발을 맞았다. 이들 역시 먼저 간 동료들처럼 한 발도 쏘지 못했겠지.

그 붉은 것에 몰려오는 구토감을 애써 참으며, 나는 시체들을 뛰어넘어 앞으로 달려갔다.

40초가 지나 있었다.

그렇게 얼마를 달렸을까. 발 밑에 총탄이 튀었다. 심장 이상으로 병신같은 내 운동신경으로 어떻게 그리 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앞으로 몸을 날리며 한 바퀴 구르고 자세를 잡아 데저트이글을 쏘았다.

-콰앙!

폭염이 터지며 내 귀를 찌르는 총성. 엄청난 반동에 총을 놓칠 뻔했지만 다행히 그러지는 않았다. 총탄은 당연히 상대에게 맞지 않았으나 충분히 위협이 되었는지 상대는 복도의 갈림길로 몸을 숨겼다. 나는 계속해서 총을 쏘며 뒷걸음질로 몸을 뺐다.

장전되어 있던 8발을 모두 비우고, 예비탄창을 장전하며 7발도 추가로 쏘자 갈림길이 나왔다. 나는 왼쪽 복도로 들어가 그곳에 쓰러져있는 경비원의 총으로 바꿔 들었다. 마찬가지로 8발.

1분 20초 경과.

나는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상대가 오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상대의 발소리가 들렸다. 아마 오른쪽 벽에 몸을 붙여서 오는 것 같다. 그렇다면 왼쪽으로 들어간 내가 이렇게 가까이 있으면 먼저 사격당할 수도 있다. 나는 몸을 조용히 일으켰다.

“큭!”

젠장. 뒷걸음질치다가 뒤에 있던 또 하나의 시신을 발견하지 못하고 뒤로 넘어져버렸다. 그 소리는 당연히 상대에게도 들렸을 것이고, 그는 재빨리 모습을 드러내고 내 쪽으로 총을 겨누었다.

나는 시신을 들어올려 보디벙커로 삼았다. 그냥 시신이었으면 액션익스프레스 탄은 가볍게 관통하여 내 몸까지 찢었을 테지만, 시신이 입고 있는 방탄복 덕에 탄환은 그 방탄복만 관통하여 시신의 몸 속을 찢어발겼다. 액션익스프레스 탄이 방탄복을 뚫고 시신에 박히자 시신은 마치 산낙지 다리처럼 꿈틀거렸다. 총 7발을 그리 받아 내고, 리로드를 하는 상대에게 시신을 밀었다. 그는 당황하여 시신을 옆으로 밀쳐냈다. 나는 그 사이에 그에게 데저트이글을 겨누고 한 탄창을 비워냈다. 그 중 두 발만이 맞았는데 한 발은 상대의 총에 맞아 산산조각냈고, 한 발은 그의 오른쪽 옆구리에 명중했다.

“하아….”

방아쇠를 당기는 건 상당히 중노동이었다. 사람의 목숨이 이 방아쇠에 같이 걸려있기 때문일까. 옆구리에 피격당하면 쇼크사가 아닌 이상에야 즉사하지는 않겠지만, 다른 무엇도 아닌 액션익스프레스 탄에 맞았으니 얼마 안 가 죽을 것이다. 뭐, 이거야 FPS게임이 아니니 44매그넘이나 9밀리미터짜리 탄환으로 맞았더라도, 그대로 두면 죽겠지.

“크윽! 이 새끼가!”

옆구리에서 피를 쏟아 내면서도 홀스터에 꽃아둔 또 하나의 권총을 꺼내는 그. 나는 달려가 그대로 그의 안면에 니킥을 꽃았다. 그는 그대로 기절했지만, 아마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겠지.

나는 탄환을 다 비워 슬라이드가 젖혀 있는 데저트이글을 바닥에 던지고 그대로 벽에 기대 스르르 무너졌다.

“하아.”

그와 동시에 1분이 남았다며 타이머가 삐 하고 울렸다.

여기까지인가, 내가 할 수 있는 건.

총을 쏘지도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23발이나 쏘았다. 뭐, 그것만 해도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다 하겠다. 남은 일은 차로 돌아가 미드나잇과 선셋이 채민을 데리고 나오는 것을 기다리는 것 뿐.

아아, 하지만, 그것도 힘들다. 왠지, 총을 쏘는데 온 힘을 다했다고나 할까. 그래서 움직이는 것이 귀찮아졌다.

뭐, 경비원들이야 미드나잇과 선셋이 알아서 처리했을테니 그들이 올 때까지 여기에 있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

30초 남았을 때 소리가 들렸다.

“아아아—!”

“채민아!”

그녀의 비명이었다.

“씹할, 뭐야!”

채민이 위험하다. 소리의 크기와 들려온 방향으로 생각해보니 이쪽 복도를 따라가면 금방이다. 하지만…,

“20초.”

그 시간이 지나면 약효가 풀린다. 풀려도 움직일 수 없는 건 아니지만, 미드나잇은 자기 말에 무조건적으로 따를 것을 요했고, 나는 동의해 버렸다. 그리고 그가 말했던 부작용이라는 것도 걸린다.

15초.

하지만 여기서 머물고 있을 수만도 없다. 어찌 되었건 간에 그녀는 2년 전 나를 살려 주었다. 내 새 희망이 되어 주었다. 이름도 모르는 녀석들이 구해 오는 걸 마냥 기다리고 싶지만은 않다.

9초.

또 한 번의 비명이 울렸다.

비명이 다 울려 퍼지기도 전에 나는 이미 전력으로 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타이머가 시간이 다 되었다는 것을 알렸다.

몸이 그대로 가라앉았다.

 

 

비명을 지를 틈도 주지 않은 채 미드나잇의 리볼버에서 발사된 44매그넘 탄환이 마지막 경비원의 머리를 관통했다. 그 경비원은 이마에서 한 줄기 피를 흘린 채 뒤로 나자빠졌다.

미드나잇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실린더에 아직 남아있는 탄환을 버리고 6발을 새로 장전했다.

-쾅!

선셋이 방금까지 경비원이 지키고 있던 문을 발로 차 열었다. 그러자 안에 있는 의사 가운을 입은 남자 셋이 흠칫하면서도 선셋을 향해 정확하게 총을 조준하며 발하샜다. 총소리가 들렸을 때부터 미리 겨냥하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녀가 차 날린 것은 두께가 꽤 두꺼운 철문이었다…. 탄환은 금속성을 내며 철문을 관통하지도 못했다.

그녀는 콜트를 한 손으로만 들고 셋의 남자들 중 두 명의 어시스턴트를 쏘았다. 미드나잇이 그랬던 것처럼 정수리에 박히는 헤드샷이었다. 그들은 비명을 지르지도 못했다. 자신이 죽는 것 조차 깨닫지 못했으리라.

둘이 쓰러지자 선셋은 그 중 한 명을 집어들어 집도의의 총탄을 막았다. 그 틈을 노려 미드나잇이 그에게 달려들어 로우킥을 갈겼다. 집도의는 총을 놓치며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미드나잇은 떨어진 총을 선셋 쪽으로 차 버렸다.

“해부학 실습은 여기까지입니다, 한 교수님.”

정말로 의사인 듯, 미드나잇은 그를 한 교수라고 불렀다. 한 교수는 품 안에서 메스를 꺼내 달려들었지만 선셋은 미드나잇이 차 준 한 교수의 데저트이글로 그의 팔을 쏘았다.

“크아악!”

채민을 해부할 때와는 달리 그의 얼굴에 표정변화가 나타났다. 통증 때문이다.

당연하다. 액션익스프레스 탄은 권총탄이면서도 5.56mm탄에 버금가는 살상력을 갖고 있다. 그것을 사람 팔에 쏘았으니, 한 교수의 팔은 너덜너덜하게 뜯어졌다. 물론 메스를 든 쪽이었다.

미드나잇은, 으음, 하고 앓는 소리를 내더니 담배를 꺼내 물고, 너에게 맡긴다, 하는 표정으로 선셋에게 시선을 던진 뒤 구석으로가 담배를 피웠다.

선셋은 귀찮아하면서도 한 교수에게 데저트이글을 겨누고 다가갔다.

“거 튀는 거 하나 억수로 빠르구만. 자, 그럼 말해봐라, 의사양반. 그 아는 어디 있나.”

“….”

한 교수는 격통을 느끼면서도 용케 입을 벌리지 않았다. 그런 그를 보며 미드나잇은 담배연기를 듬뿍 담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 간나 새끼. 그 아 어디있나 안 하나!”

“….”

여전히 묵묵부답이자 선셋은 데저트이글의 총구를 한 교수의 왼쪽 대퇴부에 아예 갖다 대었다.

“사람 인내심에도 한계가 있는 기라, 다음은 니 다리다.”

“미, 미친 년!”

그에 대한 대답으로 총성이 되돌아왔다.

“크아아!”

다리가 끊어지고 피보라가 튀었다. 한 교수는 남은 한 팔로 자신의 끊어진 다리를 움켜잡고 신음했다. 쇼크사하고도 남을 만한 부상이었지만 그는 용케도 정신줄을 놓지 않고 있었다.

“이래도 말 안하나.”

“크으으….”

어차피 한 교수가 선셋의 질문에 대답한다 해도 죽는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말하고 총살당하나 이대로 과다출혈로 죽으나 똑같으니까. 한 교수 역시 이를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대로 말을 안 하는 편이 좋다.

“야. 말 안할 생각인가본데.”

선셋이 미드나잇에게 시선을 던지며 물었다. 그러자 미드나잇은 품 안에서 앰플을 하나 꺼내더니 그녀에게 던졌다.

“호오. 이제 보니 미드나잇 니가 참말로 악마여.”

선셋은 그 앰플을 받아들고 미드나잇을 향해 감탄아닌 감탄을 던지더니, 자신의 입으로 가져가 안에 든 액체를 입에 넣었다. 단, 마시지는 않고, 그대로 한 교수에게 입을 겹치고는 액체를 밀어 넣었다.

“딥 키스로군.”

미드나잇이 중얼거렸다.

“…. 자백제라면 소용 없다.”

한 교수는 굳은 의지를 담은 목소리로 쏘아 붙였지만 선셋은 코웃음쳤다.

“누가 자백제라나 빙신.”

“뭐?”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격통이 다시한 번 그를 덮쳤다.

“크아..!”

그 격통과 함께 신기하게도 그의 상처가 아물어갔다. 채민 때처럼 팔다리가 원래대로 돌아오는 것은 아니고, 상처 부위만 급속하게 아물어갔다.

“내 니를 쉽게 뒤지게 놔 둘 것 같나?”

-콰앙!

말을 마치자마자 데저트이글이 또 한번 불을 뿜고 이번에는 그의 왼쪽 팔이 날아갔다. 피가 분수처럼 뿜어졌지만, 그 상처역시 이내 아물었다.

“다음은 어디가 될지 알겠지?”

아마도 오른쪽 다리.

“…말하면, 그들이 날 죽인다.”

그의 얼굴에 처음으로 감정이 드러났다.

“말 안해도 뒤질 기다. 니 그따위 대굴빡을 해가지고 잘도 의사 짓 해 처묵고 있네.”

“….”

“뒈지는 것보다야 의수, 의족이라도 달고 사는 게 나을 겁니다.”

미드나잇이 거들고, 총성과 함께 오른쪽 다리마저 공중을 날았다.

“아악!”

차라리 쇼크사 했으면, 할 정도의 통증. 하지만 그 앰플의 효과 때문인지 그의 의지대로 되는 건 하나도 없다.

“이거 니가 그 쪽 세계에서 개발한 약 아이가. 원체 목적하고 다르게 쓰여서 생산중단이 되긴 했지만.

얌전히 약사 노릇이나 할 것이지 해부학에는 또 왜 입문해 부랐노.“

“크으….”

“자, 그 다음은 어디가 될까.”

그러더니 선셋은 그의 페니스에 총구를 댔다.

한 교수의 눈에 경악이라는 두 글자가 떠올랐다.

“자, 잠깐!”

“의수 의족 달아도 빠구리 뜨는 데는 아무 탈 없다 아이가. 잘라 버릴 데는 많다. 5.”

선셋은 5의 아래로 하나씩 숫자를 지워나갔다.

“4.”

아마 그것이 타임 리미트. 하지만, 의수, 의족을 달고 산다해도 ‘그들’의 추격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정보를 판 자들은 끝까지 쫓아가서 제거하는 게 그들의 방식이다.

“3,”

머리가 혼란스럽다.

“1.”

선셋은 잘못 셌는지, 아니면 세는 게 귀찮았는지 2를 빼먹었다.

“잠깐! 말 할게!”

선셋은 총을 치우지 않은 채 대답했다.

“거 잘 생각했다. 어디 있나.”

“…26 러 4179, 검은색 다이너스티다! 청담대교 타고 건국대학교 쪽으로 갔다! 그, 그 이상은 나도 몰라!”

한 교수는 그리 외치고는 숨을 헐떡거렸다.

“건국대 쪽이라.”

선셋은 그리 중얼거리며 슬라이드가 젖혀 있는 데저트이글을 바닥에 던지고 뒤돌아섰다.

한 교수가 안도하는 것도 잠시,

“빙신아, 니가 아는 건 내한테 하나도 도움이 안 된다 아이가.”

선셋은 품 안에서 콜트를 꺼내 그의 머리를 조준하고 방아쇠를 당겼다.

하지만 총성은 울리지 않았다.

선셋은 한숨을 쉬었다.

“이 상황에서 잼이라니, 마 억수로 운 좋은 새끼구만.”

그러면서 기분을 잡쳤다는 듯 그대로 뒤로 돌아 밖으로 나가 버렸다.

“하아….”

십년감수했다는 한숨을 한 교수가 내쉬었고, 그 뒤를 이어 미드나잇의 리볼버가 불을 뿜었다.

희멀건 연기를 뿜는 총구를 후, 하고 분 미드나잇은 다 피운 담배를 던져 버리고는 일어나 선셋을 따라 밖으로 나갔다.

“그러게, 잼걸리는 자동권총따위 버리고 리볼버를 쓰라니까…, 뭐하나, 선셋.”

하지만 선셋이 길을 막고 있었다.

“야, 점마 봐라, 저거. 말 안듣고 설치려 했나본데.”

“후우.”

미드나잇은 고개를 설레설레 젓고는 심장쪽 가슴을 움켜쥐고 숨을 헐떡이고 있는 준혁을 바라 보았다.

by 스탈링 | 2009/11/16 19:16 | 릴레이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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